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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신다면 기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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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이 들이닥친다.

남자는 절벽 위에 서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상 만물을 집어삼킨 듯한 바다가 언제나처럼 까맣게 빛났다. 저 수면이 가까이서 보면 그의 눈과 같은 푸른 빛을 품는다는 걸, 사실은 아무런 색도 없는 투명한 물일 뿐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 바다는 늘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그 칠흑을 향한 동경은 천천히, 해안가의 잔물결처럼 잦아들어 건져낼 새도 없이 해저로 처박혔다. 그래, 저 바다가 집어삼킨 건 세상 만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세필로 새겨넣은 듯 잘생긴 청년이다. 외모를 이루는 선에 주어진 강약이 적절하여 균형 잡힌 미남이라는 평이 어울렸다. 큰 키, 단단한 몸, 중저음의 목소리.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웃음, 잘 교육 받아 예의 바른 몸가짐, 품격 있는 언행.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태도까지 통틀어 흉볼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그린 듯한 귀족 청년. 반듯한 셔츠와 단정한 크라바트, 주름 하나 지지 않은 코트까지 차려입은 남자를 두고 모두가 말한다. ‘정도正道를 걷다가 잠시 샛길로 빠졌을 뿐이다’, ‘철들지 않은 젊은 날이 길었으나 지금이라도 현명히 굴어서 다행이다’……. 

모두 묻어야 할 일이다. 목을 겨우 덮을 만큼 짧아진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이 어쩔 수 없이 허전했다. 바닷바람에 멋대로 엉켜 쥐어뜯다시피 풀어야 했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격식 없이 풀어헤친 옷자락을 휘날리게 두고 정면으로 바람을 맞이하던 일도, 호탕한 소리를 내며 웃거나 갑판 위에서 병째로 술을 들이켜던 날도 다신 오지 않겠지. 감내할 것을 각오했다. 그러나 입안이 쓴 건 불가항력이다.

뤼도빅 옌센 프리들뢰르는 강박적으로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결혼식과 죽을 만큼 사랑하진 않지만 정이 든 여인, 넓고 화려한 저택과 그 안에서 설계될 자신의 미래. 그러다 보면 새카만 바다는 열정의 무대가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다시는 너머로 갈 수 없으리라. 남자는 뒤를 돌았다. 느리게,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절벽 아래로 향했다. 한 손에 쥔 지팡이와 약지에 낀 검푸른 보석 박힌 반지가 이정표를 대신했다. 

그럼에도 그 궤적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바다 내음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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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ovic Jensen Frideleuze

뤼도빅 옌센 프리들뢰르

33세 · 남성 · 185cm · 79kg

빼어난 신사, 침몰한 탐험가, 뒤늦게 철든 청년

수평선을 응시하는 자, 예비 신랑

Commission @varionau

성격

 

[1 몸에 배인 다정 ] [2 스스로 채운 목줄 ] [3 가장과 가장과 가장과…… ]

 

  친절함, 다정함, 사려 깊음, 세심함. 남자를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 중 일부다. 잘 교육받은 결과인지 사람 대하는 태도가 예의 바르고 격식 있다.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을 땐 그에게 최선을 다하며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이상 기왕이면 즐거운 편이 좋지 않겠는가. 그는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목소리 크기를 얼마나 낮춰야 듣기 편안해할지, 어떻게 웃어야 흡족해할지, 과한 리액션을 불편해할지 좋아할지에 대해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낸 적은 전혀 없다.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그를 어릴 적부터 봐온 형제자매들 역시 동의하는 사실이다. 신사라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참 피곤하게 산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역시 얀티스 왕국민이므로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와 별개로 외향적인 면이 많이 사라져서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이 서른을 넘어서까지 지속된 철없던 사춘기는 끝났다. 그걸 증명하고 싶은 건지 그는 때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웬만한 부탁이나 요청은 모두 받아들였고, 하자고 하면 했으며 하지 말자고 하면 하지 않았다. 그 고분고분한 태도가 그를 신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가끔 보다 보면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심지어는 곤란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얀티스 왕국이 아니었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단물은 물론이고 등골까지 쭉 빼 먹혔을 것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주관이며 줏대며 욕심이며 더 넓게는 자아가 없는 셈이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그런 식으로 평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남자는 당연하게도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어 주위의 감탄을 받고 호감을 샀다. 그거면 괜찮아. 뤼도빅은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괜찮을 리 없다. 십 년 넘도록 매진했던 목표가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괜찮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인다.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크게 안도하며 드디어 철 들었다 하는 건 그 때문이리라. 너무 괜찮아 보여서. 바다니 항해니 개척이니 했던 것들이 그의 인생에서도 찰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길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의 일탈이었을 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뤼도빅은 그런 착각들과 마주하며, 웃는다. 성질대로 화내고 울고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소리를 지르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엔 제게도 염치라는 것이 있었다. 남은 삶은 속죄의 나날이 되어야 했다. 웃기지도 않는 신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생을 사는 건 무척 가벼운 형벌이었다.

상실

 

탐험 정신

  혹은 개척 정신이라 불러도 좋겠다. 원래 인간이란 평온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울 때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기 마련이므로. 평생토록 다 알 수 없을 자연에 대한 열망! 세계를 온전히 목격하고 싶다는 욕심! 거대한 세상을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자신은 그 위에 놓인 아주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절망감이 아닌 도전 정신을 태우는 열정의 불씨가 되었다. 뤼도빅 프리들뢰르는 절벽 너머, 그리고 바다 너머 혹은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검은 물결은 지나치게 매력적이었고 그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미지를 향하여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던졌던 청년은 이제 없다. 그는 나이를 먹었고, 현실을 알았으며, 죽다 살아나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알지 못하는 세상은 두려울 뿐이다. 안주할 곳이 생긴 자에게 새로운 도전은 사치에 불과하다.

기타사항

 

들뢰르와 프리들뢰르

  • 얀티스 왕국 남부에 위치한 장원의 영주 자리를 세습하고 있는 가문. 다스리는 영지를 통틀어 들뢰르라 칭하며, 들뢰르를 다스리는 이들이 프리들뢰르의 이름을 가진다.

  • 들뢰르는 왕국에서 대도시로 손꼽히는 카임과 인접해 있어 프리들뢰르는 물론이고 영지민들 역시 부유한 편에 속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부유하지 않더라도 굶주리는 이들은 없고 행복하지 않은 이들도 없다. 얀티스 왕국의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 남부의 절벽을 품고 있는 탓에 광업이 특히나 발달했다. 간간이 나 있는 해안 지대와 삼림을 통해 어업과 임업에 종사하는 영지민들이 많으며, 평지는 대부분 밭으로 사용되어 농업으로 먹고사는 이들도 있다. 카임이 근방에 있는만큼 왕국민들이 관광을 위해 걸음 하기도 한다. 즉, 온갖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그만큼 일자리가 많고 경제 순환이 활발하다.

  • 지역 특산품을 꼽으라면 해안절벽 안으로 뚫린 광산에서만 채취된다는 보석, 할게르트Hallgerd를 빼놓을 수 없다. 심해를 닮은 검푸른 색의 보석은 빛의 각도를 달리하면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해서 색다른 장신구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광산의 역사가 천 년은 족히 넘은 탓에 채집에 사용된 마법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현재까지도 해당 유물을 사용해 광업이 이뤄지고 있다. 보석 세공 장인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 역시 당연한 사실. 할게르트는 왕국에 마법이 남아있을 때부터 채굴되어 현존하는 마법 유물 중에서도 검푸른 보석으로 장식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 현 영주는 막시밀리앵 잉겔 프리들뢰르. 자애로운 영주는 영지민들을 사랑하며 다정한 영지민들 역시 그들의 영주를 사랑한다. 신분에 따른 차별은 결코 없으나 구분은 확실하다. 착취나 박대는 없어도 프리들뢰르는 어디까지나 영지민들의 위에 존재한다. 그들은 평화롭고 온건한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고, 유지하고 있으며, 유지해나갈 것이다. 평생토록.

 

뤼도빅

  • 전 영주의 막내아들, 현 영주의 막냇동생. 3남 3녀 중 막내로,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의 가장 어린아이가 으레 그렇듯 온갖 응석과 어리광을 다 받아주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할 수 있었고 갖고 싶은 것도 대부분 가질 수 있었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인생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평생 풍족히 살 수 있을 만한 환경이었으니 당연하다. 

  • 그럼에도 영주의 막내아들은 퍽 얌전한 편에 속해서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는 일은 어릴 적에도 없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형제들의 말도 잘 들어서 불화는커녕 맏형과 둘째 누이가 시시콜콜 다투고 있으면 그 사이로 뛰어들어가 폭닥 안기곤 했다. 막내가 그러고 나면 다른 형제들 역시 언제 다퉜냐는 듯 사이좋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학업에도 제법 재능을 보여 어린 나이부터 손위 형제들과 아버지를 도와 장부 정리며 계산을 돕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보였으나 무슨 일을 하겠다거나 뭐가 되고 싶다는 등의 목표 혹은 꿈은 전혀 없었다. 흔하디흔한 귀족 집안의 자제들처럼 그것이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 그런 뤼도빅이 갑자기 절벽 아래의 바다 너머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기꺼이 허락했다. 막 스무 살이 된 뤼도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를 타봤고 그곳에서 헤엄치는 커다란 고래를 만났다. 그때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 아래에 산다는 마녀가 도련님을 홀린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게 진실일지도 모른다. 배 옆으로 거대한 고래가 물을 뿜으며 솟아올랐을 때, 배가 기울어져 반쯤 굴렀을 때, 소금 내 나는 바닷물을 흠뻑 뒤집어썼을 때, 그 축축함이 기분 나쁘기는커녕 상쾌하게 느껴졌을 때, 인생이 변하고 만 것이다. 완벽한 평화로움에 익숙해져 있었던 뤼도빅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주 작은 호기심에도 맹렬히 궁금해했고, 또……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일상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이 행복했다. 그에 의문을 품거나 이질감을 느끼진 않았으나 안온함은 지루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 뤼도빅은 새로운 걸 보고 싶어 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알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할 수 있었고 갖고 싶은 것도 대부분 가질 수 있었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인생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바다에 있다고 믿었다.

  • 어떤 곳에도 추악함이나 불행함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온 세상이 그러했기에 두려움 역시 없었다. 그러므로 뤼도빅에게 있어 탐험 정신은 곧 새로운 행복을 찾고자 하는 도전에 가까웠다.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었으니까. 모든 것이 평화로웠으니까.

 

옌센

  • 첫 항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뤼도빅은 집을 떠났다. 말 그대로 가출이었다. 영주의 영향력이라면 아들이 어딜 가든 찾을 수 있었을 테니 그가 십 년이 넘는 기간동안 집을 떠나 있을 수 있었던 건 가족들의 묵인 덕분이었을 것이다. 뤼도빅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을 막을 수는 없어서 프리들뢰르의 막내 도련님이 뒤늦게 사춘기가 왔는지 가출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로 널리 퍼져나갔다. 이 왕국에 사는 이들은 모두 비난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대부분의 반응은 걱정과 염려로 끝났다.

  • 가출은 십 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뤼도빅은 자신을 옌센이라 소개하며 산맥으로 둘러싸인 북부를 제외한 왕국 가장자리를 쏘다녔고 나라를 감싸고 있는 모든 바다를 탐험했다. 어민들 사이에 섞여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고, 깊게 잠수하는 법을 배웠으며, 큰 배를 조종하는 항해술도 배웠다. 선박을 어떻게 만들고 건조하는지 돛은 어떤 천으로 만들며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어느 날은 보물섬을 찾으러 간다는 탐험가들 사이에 섞여 바다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생물학자들과 함께 심해 생물을 채집하기도 했다. 한참을 그랬는데도 바다는 정말이지 넓었다.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그래서 좋았다. 바닷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 옌센은 솔직하고 호기로우며 활기차고 저돌적인 청년이었다. 자신을 숨기는 법이 없었고―신분에 관해 물어보면 어물쩍 웃으며 넘겨버렸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천성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라 다정한 심성을 지닌, 탐구욕이 넘치는 청년은 생명력이 충만한 만큼 잘생기기까지 해서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옌센은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아주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 나이가 스물 중반을 지났을 무렵에는 잘 교육받은 이 특유의 리더십과 추진력을 발휘해 마음 맞는 친구들과 직접 탐험대를 꾸렸다. 목적은 수평선 너머로의 탐색. 왕국이 고립되기를 택한 만큼 타국과의 교류가 없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나 탐험은 궤가 다른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했다. 밋밋한 수평선을 지나면 배가 뚝 하고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의 항해는 몇 년에 걸쳐 진척을 보여 점점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 ……그리고 옌센이 서른두 살 되던 해, 최장 항해 거리를 기록하고 돌아오던 배가 암초와 충돌해 침몰했다. 마법 유물을 상비하고 있었기에 사망자는 없었으나 옌센은 왼쪽 다리가 부러져 온전히 걷지 못하게 됐다. 그는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불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 당연한 사실 하나는 모든 의지가 꺾였다는 것뿐이다.

 

뤼도빅 옌센 프리들뢰르

  • 다리를 절며 돌아온 막내를 모두가 환대했다. 걱정과 염려는 있었으나 질책과 비난은 없었다. 방황이 길었지만,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 듯했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뤼도빅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 꼴이 이러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거겠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니 혼내지도 않는 것이고…….

  • 그리고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 영주가 된 맏형은 사랑해 마지않는 막냇동생이 긴 일탈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 모든 배려로 뤼도빅은 십 년이나 자리를 비웠으나 복귀하자마자 영주의 측근 수행원 자리를 맡게 되었다. 바다를 사랑하던 동생을 아는 막시밀리앵은 해안 지역 관리 역을 권했으나, 뤼도빅은 웃으며 사양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형님. 이제는 바다를 오래 보면 현기증이 나요. 

  • 또 다른 배려는 혼사였다. 뤼도빅은 몇 개월 되는 시간 동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정해진 약혼녀와 여러 번 만남을 가졌고 결혼식 날짜도 확정 지었다. 정략결혼에 정열적인 사랑이 싹틀 리 없지만 둘 모두에게 늦은 혼인인 만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들은 할게르트가 박힌 은반지를 주고받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반려가 되리라 생각했다.

  • 그리고 결혼식 사흘 전, 창틀 위로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기타

  • 다리를 다친 후로 종종 악몽을 꾼다. 대부분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부분에서 끝나지만 더 길어질 경우 해면 위에 떠오른 익사체들의 등이나 얼굴을 보기도 한다.

  • 다친 것은 왼쪽 다리. 걸을 때마다 절뚝이는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 마법 유물을 사용해 교정해보려 하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만큼은 효과가 없었던 듯. 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주기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한다. 무늬 없는 일자 모양의 지팡이를 항시 쥐고 다닌다. 사람을 만날 땐 양손에 장갑을 낀다.

  • 영지로 돌아온 이후로는 반듯한 태도를 항시 유지해왔다. 마치 지난 십여 년간의 공백은 없던 일인 양. 귀족으로 나고 귀족으로 자라 귀족으로 살아온 인간의 표본과도 같다. 옷에는 주름진 곳이 없고 머리는 늘 깔끔하게 유지하며 우아한 말투와 억양을 구사한다. 거기다 친절하고 배려 넘치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신사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 현재 영주의 수행원으로 서류 및 장부 정리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집안일이니 몸이 좋지 않은 막내에게 일을 많이 맡기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남들보다 업무량이 확연히 적다. 뤼도빅은,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감사하다 말했다.

  • 마녀에 관한 이야기는 영지에 떠도는 소문이나 어릴 적 읽은 동화책으로만 접해봤다. 마법 유물은 여러 번 사용해 왔으나 지금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으로, 마법의 힘을 불신한다.

  • 가족들이 부르는 애칭은 뤼, 혹은 비키. 친구들은 그를 옌이라 불렀다.

  • 이르게 기상하고 이르게 취침한다. 규칙적인 생활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수면 시간이 길지 않다.

  • 소식가. 정확히는 들뢰르 영지로 돌아오며 그리되었다. 배를 타고 다닐 땐 먹는 양이 결코 적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하니 단련을 하지 못해 체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평균 이상이다. 이전의 체력이 워낙 좋았던 덕이다.

  • 물욕이나 소유욕이 거의 없다. 가끔은 욕구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역시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덕일지도 모른다.

  • 감이 좋다. 대체로 불길한 쪽으로의 직감이다.

  • 호 : 고요함, 아늑한 실내, 너무 밝지 않은 불빛, 평온함, 집

  • 불호 : 소란함, 바다, 파도, 고래, 수평선, 회고

  • 행복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행복하다 답한다.

능력치

힘       : ◆◆◆◆◆ (5/5)

집중력 : ◆◇◇◇◇ (1/5)

지구력 : ◇◇◇◇◇ (0/5)

직감    :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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