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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러니까, 꽃잎이… 

절대 내가 일부러 꺾은 게 아니라 알아서 떨어진 거라고

해명하고 싶은 얼굴로 그는 어색하게 서 있다.

완료_에밀.png

환기되지 않은 서재, 오래 묵은 잉크, 보잘 것 없는 유령

 

창을 통해 빗금처럼 들이치는 햇빛에 창백한 눈꺼풀이 느릿하게 들린다. 살짝 찡그린 미간 새로 매달린 잠을 털어내듯 길다란 속눈썹이 두 어 번 틈을 두고 깜박이고 나면 흐릿했던 시선에도 금방 초점이 잡혔다. 자는 사이 조금 뒤척인 모양인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 길다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낸 남자가 느즈막이 몸을 일으켰다. 손등까지 덮는 길다란 청색 나이트 가운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랗고 핏기 없는 손가락이 침대맡에 기대어 진 지팡이까지 찾아 들면, 그제서야 익숙한 모습이다. 희미하고 단정한, 언제나의 에밀 로이드.

 

낮이면 적당히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카임. 당신이 그곳에 들린 적 있다면 얽히고 설킨 닻줄만큼이나 복잡한 이 항구 거리 어딘가에서 그와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설명할 때 쓰일 법한 하고 많은 단어 중 굳이 ‘모르겠다’, 같은 은근슬쩍 얼버무리는 어미를 고른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남자는 아주, 상당히, 엄청나게, 굉장히, 놀랄 만큼, 끔찍하게, 그리고도 터무니 없이 지루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어디 보자. 서점에 발을 들인 경험이 있는가? 은쟁반에 떨어진 동전보다도 경쾌하게 딸랑이는 도어벨 소리가 들릴 테고. 그 음침하고 고즈넉한 공간 제일 안쪽에서 허겁지겁 달려나와 손님을 반기는 주인장의 모습이 보일 테고-아니. 어쩌면 당신은 손이 들거나 말거나 한쪽 다리가 썩어 부러진 탓에 균형이 맞지 않는 앉은뱅이 의자에 고집스레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코안경 차림 독서광 노인장을 만났을 지도 모르겠군.- 그 다음으로는 <이 달의 유행 도서> 코너가 시선을 끌 테다. 휘황찬란한 표지와 금빛 띠지를 두른 그 책들은 어쩌면 소녀들이 눈에 불을 키고 쫓아다니는 기사 소설일 수도, 사내애들이 눈치 보며 집어드는 연애 소설일 수도, 장바구니 든 중년들이 집어드는 요리책일 지도 모르겠다. 살 생각도 없으면서 하염 없이 가판대 앞에 서 책장을 뒤적이던 객들이 참다 못해 큼큼대는 주인의 헛기침 소리에 마지 못해 내려두곤 하는 그런 인기 만점 책들은 당연하게도 어디서나 눈에 띄고, 또 많은 이들의 손때로 반들거린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고개를 틀어 더 안쪽, 채광도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공기조차 텁텁한 종이의 무덤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이런 책이 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아 책등이 빳빳하고, 아무도 찾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고, 관심 없는 시선이 스치듯 지나고 나면 10초 안에 표지의 색감마저 뇌리에서 지워버릴 책. 심지어는 서점의 주인마저 ‘아, 맞다. 저 쓸모 없는 책, 나중에 시간 나면 버려야지.’ 푸념처럼 투덜대자마자 그 즉시 잊어버려 10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쌍한 파수꾼. 이 모든 것이 대충 머릿속에 풍경처럼 그려진다면, 아주 좋다. 이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모두 안 셈이다. 

 

구석에 내팽겨쳐진 채 그대로 잊혀져 버린 책처럼, 이 흐릿하고 음울한 남자 또한 무엇 하나 특출난 부분이 없다. 유일하게 봐줄 만한 건 나무처럼 길쭉하니 커다란 키 정도인데, 그마저도 원체 타고난 체격이 작고 뼈대가 얇아 단단한 밤나무보다는 여관 주인이 고양이를 쫓기 위해 대충 허공에 휘적거리는 싸리나무 빗자루따위에 가깝다. 다른 부속지들은 더 볼품 없다. 길게 길러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리께에서 살랑이는 얇은 머리칼은 물빠진 회색. 흐릿한 속눈썹 아래로 감춰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음울한 눈동자는 옅은 청색. 여름 한낮의 항구의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혈색이 돌기는 커녕 당장이라도 무덤에서 끄집어내진 망자처럼  창백한 낯빛은 누가 봐도 병자의 그것이며, 유순해보이는 인상과 늘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납지도 밝지도 않은 어드매의 멍한 표정은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유 모를 오싹함을 불러 일으킨다. 심지어는 지척을 지날 때 나는 향마저 보잘 것 없다. 아주 오래된 서재에서나 날 법한 먼지 냄새. 썩어가는 종이와 말라 비틀어진 잉크가 지층처럼 켜켜히 쌓인 듯한 답답한 향기. 

 

그럼 하다 못해 복장이라도 특이할 것이지. 불행히도 그는 타고 나길 관심 받긴 글른 모양이다. 그의 복장은 지독하게 평이하다. 아니, 평이하다 못해 매일이 진절머리 날 만큼 똑같다. 각을 맞추어 빳빳하게 다린 흰색 드레스 셔츠는 손목 끝, 턱 끝까지 모든 단추를 단정하게 채우기. 체크. 머리는 묶거나 장식하는 법 없이 늘 귀신처럼 풀어내리기. 체크. 발목 위에서 흔들리는 트위드 바지는 평범하고 무난한 회색. 체크. 밑창이 조금 닳은 듯한 검은색 옥스포드화는 강박적일 만치 얼룩 하나 없는 채로. 체크. 이 남자의 착장을 두고 빙고 게임을 진행한다면 아마 모두가 공평하게 1등이겠지. 하지만!

 

그런 지렁이에게도 볕 들 날이 365일 중 딱 하루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씩은 맞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남자의 그런 행운-혹은 불운-은 바로, 지팡이다. 듣기로는 날 때부터 불편했다는 오른 다리를 보조하기 위해 그는 어딜 가든 제 골반쯤 오는 검은 지팡이를 챙겨 다닌다. 흑요석으로 조각된 검은 갈까마귀가 손잡이에서 곧 날아오를 것 마냥 날개를 반쯤 펴고 있고, 그의 창백한 손가락은 언제나 그 가엾은 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날갯죽지 사이를 단단히 틀어쥔 채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 지팡이 끝을 짚는다. 툭. 툭. 어색하게 절뚝이는 보폭은 필연적으로 좁다. 팔을 조금만 뻗어도 끼어버릴 만치 답답하고 으슥한 골목길을 벗어나는데만도 10분. 남자는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움직이며 어렵게 얻어낸 남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밝은 대로 속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내가 말했듯, 그는 그런 지루한 남자다. 왕자님의 머리에 얹힌 왕관 같은 찬란한 백금발도, 사랑스러운 장밋빛 뺨도, 바다 같이 새파란 눈도 가지지 못한. 동화속 기사님처럼 멋진 제복을 입고 있지도, 연애 소설 속 신사처럼 태가 나는 정장을 입고 있지도 않은. 심지어는 당신이 이 모든 묘사를 듣고 나가는 길에 마주치더라도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할 수많은 그들 중 하나. 지나치게 평범한 인간. 희미하고 재미 없는 행인—,

 

 

 

 

 

 

 

 

 

 

 

 

 

 

 

 

 

 

 

 

 

 

 

 

 

 

 

 

 

 

 

 

 

 

성격

 

[1 미숙한 ] [2 감성적인 ] [3 우울한 ]

어쩌면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부끄럽게도 삼 일 밤낮을 새며 고민해보아도 도통 자랑스레 내세울 만한 점이 단 한 가지조차 떠오르지 않더군요. 오, 이런… 시작부터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당신께서도 이런 한심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만나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결국 그래 너같은 녀석이랑은 도저히 결혼 못하겠다며 파혼을 선언한 전 약혼자와 주고 받은 첫 편지에서 일부 발췌-

 

기본적으로 아주 많이 서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남들보다 훨씬 느적이는 행동거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그의 태도 전반에는 어딘지 모르게-사실 우리 모두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인간과 자주 대화해보지 않은 자 특유의 미숙함이 배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본인도 그걸 자각하고 있기에 대화 도중 제풀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때가 잦았다. 그런 어색한 순간이 가시고 나면 정해진 예보 마냥 얼굴 전체에 먹구름처럼 드리우는 우울감은 그와 대화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관찰해 보았을 일이다. 꼭 두 명 이상이 청자와 화자를 번갈아 겸해야만 하는 대화라는 상호 작용의 특성상 그 일련의 삐걱거림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퍽 고통이었고, 해가 갈수록 이 사회성 없는 남자의 말수가 점점 적어졌대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따뜻한 볕이 드는 카임의 해양 공원 근처 벤치에 앉아 혼자 고요히 독서하며 보내길 좋아하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산 자들보다는 죽은 활자들, 과거의 영웅과 전설, 마법과 기적에 대해 공상하는 것이 편한, 좋게 말해 감성적이고 나쁘게 말해 죽어라 사회성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동풍이 불면.

 

흩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동트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연녹빛 눈이 짙어지는 때가 있다. 읽고 있던 책을 덮는 것도 잊고, 규칙적으로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제 눈에만 보이는 허상, 혹은 환상을 유영하는 듯한 멍한 낯으로 한참을. 그럴 때의 그는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지곤 했다. 곧 꿈에서 깨어난 낯으로 겉옷을 여미며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살짝 상기되어 있는 낯이 방금 그 일이 환시가 아니라는 걸 증거한다. 역시 그런 그의 모습을 목격한 적 있는 누이의 말을 옮기자면,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 괴상한 얼굴만 생각하면, 난 그 애가 단명할 거란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작자들은 내 아우님을 모르는 거야. 그 말라 비틀어진 나무 등걸 속에도 아직 움트지 못한 새싹 같은 게, 빌어먹을. 아무튼 있다니까?!

상실

 

파 혼 당 했 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기타사항

 

연약하디 연약한 로이드 집안의 도련님. 아마 스무 살도 넘기지 힘들거라지?

 

수식어만 무성할 뿐 명망 있는 자리에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이 섬약하고 우울한 청년은 쉬이 그 손윗 누이와 한 덩어리로 묶여 소개되곤 했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그 유명한 헬레나 로이드의 이름자는 들어봤을 정도로 그의 누이는 유명한 편이다. 겨울철 햇살보다도 흐릿한 그와는 반대되는 모든 특질들을 선물처럼 쥐고 태어난 여자는 어디서든 자연스레 관심을 독점해왔다. 태양처럼 번뜩이는 새빨간 머리와 새파란 녹음을 닮아 선명하게 빛나는 눈. 보기 좋게 박혀 건강미를 더해주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과 5월의 장미를 닮아 생기 넘치는 뺨. 게다가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하고 더러운지 그녀가 한 번 등장했다하면 그 반경 20m 정도가 그녀의 사자후로 쩌렁쩌렁 울릴 정도. -그런 그녀를 미워하는 어떤 치들은 그녀를 들어 빨강 머리 소금 마녀가 어쩌네저쩌네 하고 뒤에서 입방아를 찧어대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면전에서 떠드는 이들은 없다. 당연하지. 그들도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조부 대부터 대륙의 소금 장수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올린 상인 가문, 로이드 가의 젊은 가주가 장자가 아닌 헬레나 로이드라고 한대도 그 누구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니, 사실 놀랄 일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고 허약하고 비리비리하고 나약하고 희멀건했던 작은 도련님이 스무 살을 한참 넘긴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 아닐까. 지금 로이드 저택의 사용인들 사이에서는 그가 과연 서른 살 생일을 무사히 맞을 수 있을지, 혹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할 지를 두고 하는 내기가 유행이라는데, 불길하게도 서른 살을 넘긴다는 쪽의 배당률이 어마어마하다는 소식도 얼마 전 소금기 어린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다. 바로 지난 달 편지에서 누이가 잔뜩 화가 난 필체로 직접 밝히길 그 사특한 사용인들을 묵사발 내놓은 게 벌써 네 번째라고. (정작 내기 대상인 에밀 로이드는 그 대목에서 조금 힘 없는 웃음을 터트린 게 다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오누이는 사이가 제법 좋다.

 

그래서인지 이 하릴 없는 막내 한량은 따뜻한 남부의 카임에 머물며 독서와 산책 이외의 여가 시간에 주로 따뜻하게 우린 허브차를 마시거나, 편지를 쓰거나, 혹은 허브차를 마시며 편지를 쓴다. 몇 통은 빠른 은퇴 후 타지에서 제2의 인생을 기깔나게 즐기고 있을 -하하, 헬레나. 너도 머리털 좀 빠질게다!-부모님께, 그리고 대부분은 대륙 여기저기서 실무 작업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쁠  누이에게-하하, 아버지. 그 반짝이는 대머리는 요즘 좀 괜찮으세요?- 가는 글이다. 답장은 가는 것에 비해 조금 더 느슨한 빈도로 오지만 본인은 무료하고 상대는 바빠 죽으려는 상황이니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다. 다만 천성이 그리 무딘 대신, 이라고 하긴 뭣하나… 의외로 입맛은 제법 까다로운 편이라 그의 평화로운 티타임에 곁들이는 다과들은 전부 세심히 선별된 것들이다. 트레이 가득 차려진 치즈를 넣어 구운 타르트, 산딸기잼을 듬뿍 얹어 만든 푸딩들처럼 다디단 간식들은 음주도 흡연도 불가능한 인간의 마지막 남은 일탈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런 거창한 다과 후 남은 간식들은 흰 손수건에 싸놓았다가 산책길에 비둘기들에게 던져주곤 하는데, 흠. 그 때마다 근처 행인들이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그는 지금 습관처럼 물푸레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크림색 편지지와 깃펜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1. 지난 주 일방적으로 통보 당한 파혼 소식(상대방인 레이나는 그와는 달리 언제나 당당하고 저돌적이었다.)에 대해 헬레나에게 뭐라고 변명할 것인지(게다가 따지자면 굳이 변명할 건덕지도 없다. 이건 35년 전 거나하게 취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의 미래를 팔아넘긴 전대 로이드 가주, 그러니까 헬레나와 에밀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해명해야 할 문제다.)

  2. 그리고 그 파혼 이후로 거듭되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에 대해 솔직하게 토로하고 조언을 구할 것인지.

 

그래. 2번. 그러니까, 이건 아주 이상한 일이다. 파혼이야, 뭐. 애초에 서로 마음도 정도 없는 관계였으니 언제든 들이닥칠 일이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이 이상한 현상들은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산책길 나무 밑으로만 걸어가면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잘 익은 사과나 배 따위에 머리를 자꾸만 맞는다거나,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창문이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거나. 심지어 어제는 늘 그렇듯 항구 근처를 산책하는데  웬 새하얗고 커다란 돌고래가 다가오더니 냅다 얼굴을 향해 바닷물을 뱉고는 끽끽대며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이 마지막 일만 아니었더라면 에밀은 아마도 십 여년이나 본의 아니게 제게 묶여 있던 레이나가 길었던 약혼 생활의 끝을 축하하는 이별 선물 겸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힐 사람을 고용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 마지막 일만 아니었더라면. 이제 그는 편지지를 거의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적어 저택으로 보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예상컨데 지금도 높다던 그 배당률이 거의 하늘을 향해  치솟겠지. 요즘 들어 늘 다크서클이 턱끝까지 늘어져 있다는 헬레나도 이번만큼은 미루지 않고 부리나케 답장할 것이다. ‘미친 놈. 빨리 플로스 본가 복귀해. 네놈이 이 누님한테 인사도 없이 제멋대로 황천길 여행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의사에게  보여야겠다.’  아직도 귓가에서 맴도는 우윳빛 돌고래의 사악한 웃음소리를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어 대던 에밀 로이드는 결국 크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울한 얼굴로 지팡이와 외투를 챙겼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정신도 차릴 겸 잠시 산책이라도 다녀올 셈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37초 후 자신을 향해 미친듯이 쇄도하는 12마리의 고양이들을 피해 29년 인생 최고 속도로 귀가하다 저택 현관에 꼴사납게 엎어졌다.

능력치

힘       : ◇◇◇◇◇ (0/5)

집중력 : ◆◆◆◆◆ (5/5)

지구력 : ◆◆◆◆◆ (5/5)

직감    :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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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 James Lloyd

에밀 제임스 로이드

29세 · 남성 · 179cm · 마름

 

이방인, 잊혀진 유령, 외톨이.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지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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